두번째, 후쿠오카. 정확히 1년만이다.
" 넌 무슨 일본을 교외 나들이 가듯이 가니? 그것도 비행기표 비싼 연휴에"
출발 36시간 전, 충동적으로 표를 구해 급작스레 해외 여행을 가다니 부모님의 질타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걸지도 모르겠다.
과정이야 어쨌던간에 나는 내일이면 사랑스러운 작은 도시 후쿠오카에 가 있을 것이다.
준비없이 떠나는 여행은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가볍게 짐을 싸고 자리에 누웠는데 아뿔싸..조금 전까지의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
"이러다 맛있고 예쁜 곳은 한 곳도 못보고 오는거 아냐?"하는 걱정과 함께 전투적 자세로 여행에 임하는-_-고질적 직업병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후쿠오카 카페 사이트들을 찾아내 카페 리스트업을 시작;; 다음날 새벽, 코까지 내려온 다크써클과 충혈된 눈으로 공항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스레 정리한 후쿠오카 카페 목록을 들고 여행길에 오르니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나는 쉬엄쉬엄 편하게 다니는 쾌적한 여행 따위는 절대 할 수 없게 된걸까? ;;
큐슈에서는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라지만 사실 후쿠오카는 도쿄에 비하자면 꽤나 작은 느낌의 도시다. 특히 볼 것,먹을 것,살 것이 한 데 모여 있어 힘들이지 않고 관광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
후쿠오카의 카페들은 알게 모르게 도시의 자체의 분위기를 그대로 닮아있다. 유행에 따르기 보단 자신의 개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도쿄의 여느 카페에서 느껴지던 세련됨은 없지만 그보다 더욱 사랑스러운 아기자기함이 있다.
후쿠오카 카페 중 제일 먼저 소개해 볼 스팟은 야쿠인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 있는 카페 그리뇨테Grignoter)다.
여자들의 잠재된 걸리쉬 판타지를 자극시키기에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파스텔 로망.
여자라면, 한번쯤은 동화속에 나올법한 파스텔톤 공간을 꿈꿔 봤을것이다.
일명, 걸리쉬 판타지 (Girlish Fantasy).나 역시 전형적인 소녀타입은 아니지만 소녀 감성의 아기자기한 공간을 볼때면 가슴이 설레이곤 한다.
그리뇨떼를 알게된 것은 여행 마지막날, 점심을 먹기위해 들렀던 카페 ICCONE에서 였다. epi라는 잡지를 훑어보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파스텔빛 사진 한 장. 사진 속 카페의 모습에 반해 우리는 무작정 야쿠인으로 향했다.
작은 카페라 그냥 지나치게 되진 않을지 걱정을 했건만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오는 파스텔톤 하늘빛 입간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카페의 로고인 귀여운 다람쥐와 몽실몽실한 컵케이크 일러스트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해지는걸 보니 선머슴 같은 내 모습 뒤에도 소녀적 감성이 조금은 살아있긴 한가보다.
삐걱대는 나무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니 동화 속 한 장면이 연상되는 아기자기한 공간이 펼쳐진다. 기막히게 카페와 완벽하게 어울리던 귀여운 음악까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으로 동화스러운 곳이다.
파스텔톤 체크무늬 테이블 매트,예쁜 일러스트의 뽀송뽀송 담요. 10평 남짓 되보이는 작은 공간은 온통 귀여운 소품으로 가득했는데 안 쪽의 키친을 제외하면 3개의 테이블이 겨우 들어차 있는 아주 아담한 공간이었다.
좁은 카페 안에는 내 나이 남짓 되보이던 아가씨들이 연거푸 "가와이"를 외치며 카페 이 곳 저 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 역시 아기자기한 공간에 감탄하며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대다 테이블에서 찍는 사진 외에는 촬영이 금지 되어있단 말에 머쓱해져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인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카메라에 내 모습이 허락없이 찍히는건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니깐.
우리는 하얀 커튼이 드리워져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튼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파스텔톤빛 방울들이며, 스노우볼, 도트무늬 무릎담요까지 무엇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주문을 해볼까?
메뉴는 단촐했다. 솜씨좋은 주인이 직접 만든다는 디저트들과 차와 커피가 전부.
디저트는 매주 그 종류가 달라지는데 타르트, 케이크, 쿠키 등등 그 종류가 다양했는데 아마도 제철의 좋은 식재료에 맞춰 주인 언니 마음대로 메뉴를 바꿔내는듯 했다.
이 주의 메뉴는 딸기밀크바바로아크림, 화이트 초코 바바로아, 가또쇼콜라, 바나나 시폰케이크가 준비되어 있었다.
옆 테이블 아가씨들이 "오이시"를 외치며 먹던 바나나 시폰 케이크가 살짝 궁금했지만 고민 끝에 제철 딸기로 만든 딸기 밀크 바바로아 크림을 맛보기로 했다.
사랑스러운 모습의 딸기 밀크 바바로아 크림. 딸기와 다쿠아즈, 약간의 생크림이 가니쉬로 더해져 나왔다.
바바로아(Bavarois)크림은 차갑게 먹는 크림형 디저트의 한 종류로 영어로는 바바리안(Bavarois) 크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크림과 계란 노른자등으로 만든 바닐라 소스에 젤라틴을 넣어 탱탱한 식감을 더해지는 차가운 디저트.
조금전 까지 배가 너무 부르다며 발을 동동 구르던 우리. 디저트가 테이블에 놓이자 언제 그랬냐는듯 스푼을 들고 서로를 쳐다봤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스푼을 가져다 대는 쪽은 나다. 먼저 가니쉬를 제외하고 크림만 듬뿍 떠 맛을 보기 시작했다.
덩어리없이 매끄럽게 만들어져 부드러우면서도 젤라틴의 견고하면서도 탱탱한 식감이 잘 어우러진다. 바바로아 크림은 여름의 디저트라 생각하기 쉽지만 제철의 딸기와 천생 연분을 이루는 겨울에도 역시 참 좋구나 싶은 생각.
푸딩보다는 진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크림 자체보다는 덜 부담스러운 제대로 만든 바바로아 크림을 맛볼 수 있었다.
스푼을 바삐 움직이며 머리 속으로 상상 속 케이크를 만들어 본다. 가니쉬로 놓여진 머랭 과자를 성곽처럼 둥글게 쌓고 안쪽엔 시럽에 적신 제노와즈와 바바로아 크림을 켜켜이 채워 싱싱한 딸기를 가득 올리면 ! 상상 속 케이크에 입맛을 다시는 동안 그릇 가득 담겨 있던 바바로아 크림은 게 눈 감추듯 없어졌다. 정말 대단한 식욕.
바바로아 크림에는 얼그레이와 밀크티를 함께 주문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부드럽고도 진한 맛의 밀크티가 바바로아는 천상의 궁합! 깊고 우아한 맛이 보통의 홍차는 아니겠거니 싶었는데 역시나 마리아주 프레르. 홍차를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 유명한 홍차는 홍차를 잘 알 지 못하는 내 입에도 확연히 차이가 느껴지니 홍차에 매료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공간을 갖고 있다는거, 정말 행복할꺼같아"
"너무 작은것 같긴 한데 ..왠지 손님이 와도 그만, 안와도 그만. 그런 작업실같은 느낌이랄까?"
"매주 만들고 싶은 메뉴로 바꿔가면서.. 내가 만들어보고 싶은 메뉴 다 만들어보고 !
나랑 취향 비슷한 사람들이 와서 좋아해주고.. 이상적인 작업실이다,정말"
"그 일본 만화 있잖아. 사연있는 사람들이 와서 만들어달란 음식은 다 만들어주는 식당이야기.
<심야식당>. 넌 심야카페를 하는거야 ㅎㅎ "
나 역시 그런 공간을 꿈꾼다. 철저하게 내 취향으로 꾸며진 작은 공간에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만 만들고, 좋은 사람들만 삼삼오오 모여 함께 먹고 함께 즐길 그런 공간. 사무실도, 술집도 , 카페도 아닌 그런 나만의 공간 말이다. (물론 그런 공간은 그저 "로망", "꿈"이란건 나도 잘 알고 있다 -_- )
그래서 난 그녀가 부러웠다. 다른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자신만의 짙은 색을 갖고 있다는 것도 부러웠고, 그녀만의 키친에서 정해진 메뉴가 아니라 자신이 만들고픈 디저트만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그랬다.
그녀는 찾아주는 손님들이 그리뇨테를 친구의 방처럼 편안하게 생각하고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처럼 스쳐지나가는 이방인은 절대 느낄 수 없겠지만 분명 그 곳을 찾는 손님들은 그리뇨테라는 공간에서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단지 손님이 아닌, 카페의 주인이 되고 싶은 그 곳. 그리뇨테.
카페 가득 풍기던 진한 홍차향과 제목도 모른채 흥얼거리게 되던 그 곳의 노랫소리가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글, 사진,편집 : 레카미에 (rimi.kr@gmail.com)
원문 : 맛있는 상상, 리미 (www.rimi.kr)

저도 저만의 꿈같은 공간을 상상하면서
왠지 '메뉴에 있으니까 무조건 쇼케이스를 채워야 하고
일정 수량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시간이 지날수록 싫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메뉴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참으로 마음에 드네요 : )
친구와 달콤한 디저트를 먹으며 수다를 떨면
모든 고민이 날아갈것 같아요.
저런 공간을 갖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전 노력하는건 전혀 없네요...
전체적인 색감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 보이는건 저만의 생각은 아니겠죠?
게다가 마리아쥬 프레르라니!! 정말 환상적이잖아요.ㅠㅠ
너무너무 가보고 싶네요.
후쿠오카는 몇년전에 한번 가보고 안갔는데,
갑자기 규슈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나게 만드네요!
개인적으로 후쿠오카부터 시작한 컨텐츠가 매우 기쁘며 기대됩니다 히힛 :)
팅커벨님) 아담한 공간이죠? 집 가까운곳에 저런 아지트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저도..열심히 노력해야 할텐데 ;; ㅎㅎ
Lise님 ) 자신만의 색이 강한 분 같았어요.. 마리아쥬 프레르! ㅎㅎ 후쿠오카에 가시면 꼭 들러보세요
Spear님) 아기자기한 매력이 가득한 곳이었어요..^^바바로아 크림도 너무 맛있었구요.. 카페에서 판매하는 선물셋트도 탐이 나더라구요
제대로 달았나 확인차 클릭해서 다시 이포스팅을 봤어요.
매번 이렇게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라...ㅋ
첫번째 사진 넘 이쁘네요.
http://maps.google.co.kr/maps?hl=ko&newwindow=1&q=%E3%82%B0%E3%83%AA%E3%83%8B%E3%83%A7%E3%83%86%E3%81%A0%E3%82%88%E3%82%8A&lr=&um=1&ie=UTF-8&sa=N&tab=wl
http://grignoter.petit.cc
참고하세요~
너무 이뻐요. ㅋㅋ
괜히 뿌듯해진다는...
가게나 한번 차려볼까욯ㅎ?
저도 이번 겨울엔 꼭 일본을 다녀와보려구요..ㅎㅎ
아포가또라도 먹으러 가야 겠어요 ㅋㅋㅋㅋㅋㅋ